민주노총의 메일 하나, 기자를 왕따시키다

한 기자가 필자에게 "왜 자꾸 나서나, 튀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 지난달 16일의 일이다.

필자가 이런 말을 들은 이유는 울산민주노총이 9월 15일 울산지역에서 활동하는 수 십명의 기자에게 보낸 메일 때문이다.

당시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연일 언론의 공격을 받고 있었고 다시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언론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서 반격을 시도하던 때였다.

▲ 민주노총이 기자들에게 보낸 글

A4용지 두 장 분량의 비교적 장문의 글에는 '자본과 기득권보수에 구부러진 펜대를 가진 것이 정론직필입니까?' 라는 자극적인 문구에다 '편향논리와 민주노총울산본부 왜곡기사를 비판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민주노총이 보낸 이 한 통의 메일은 보도에 대한 항의와 서움함, 노조의 정당성 등이 비교적 논리적으로 담겨 있었다.

문제는 기사 내용에 필자를 거론했다는 것. 알게 모르게 기자세계에서 필자가 왕따 당하는 요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리면서 지역 언론계에 경계의 대상이 되곤 하는 데 이 한통의 메일은 그 경계를 더욱 굳건히 했다.

민주노총의 메일에는 울산에서 벌어졌던 '현대차 정몽구 회장 살리기 운동'에서부터 민주노총의 지난 여름 '하투'등이 포괄적으로 포함돼 있었다.

한 경제지에 실린 기자칼럼이 울산옥서초등학교 조리종사원 해고사건, 지난 여름 노조의 소비파업, 포항건설노조 사태를 거론하면서 민주노총에 대한 비난을 한 데 대한 답변 형식이다.

경제지는 옥서초 해고 사태를 두고 "민노총의 노동운동 개입은 정상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고 했고 민주노총이 지난 여름 벌였던 '소비파업'에 대해서는 "이 같은 변종파업의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고 거론했다.

또 "포항건설노조 사태도 민노총이 개입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하는 등 민주노총이 보기엔 비난 일색이었다.

민주노총은 기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이 기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메일로) 기자에게 억수로 재수없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칼럼을 조목조목 비난했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소비파업'을 설명하며 필자를 거명한 것. 메일에는 "얼마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의 기자가 음식점협회에 문제제기를 한 바있는 데, 인터넷신문도 건드리는 문제를 왜 바로보지 못할까? "고 거론한 것.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메일은 필자가 기자들에게 왕따를 당하기 충분하다. '이 기자처럼 기사를 쓰라'는 소리로도 비춰지기 때문. 세 살 먹은 어린이가 아니고는 누가 이런 상황을 원할까?

하지만 필자는 민주노총의 '무단 인용(?)'에 대해 한 마디 항의도 하지 못했다. 그 내용이 보편타당한 내용이라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이 메일은 기자사회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때문에 거론된 필자는 알게 모르게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필자는 민주노총 소속도 아니고 취재 대상자들을 제외하곤 민주노총과 일면식도 없다. 때문에 일부 기자들이 "민주노총을 편애했다"는 오해에 대해 대꾸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주변의 눈초리를 의식한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 <막시무스의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법>이란 책을 우연히 접하고 비난의 눈길들을 웃어 넘길 수 있었다.

책 첫장에는 독일의 종교개혁가 루터가 한 말-누가 나를 모욕해도 내가 받지 않은 모욕은 나의 것이 아니다-가 적혀 있었다.

박석철 기자 psc@sisaul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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