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이야. 들을 수 있니? 저 무서운 발자국 소리 우리의 흡혈 빨아들이며 날로 커지며 저벅저벅 우리를 짓밟으러 오는 싸늘한 빚의 발자국 소리. 이 땅에 우리 계급은 신용불량자. 날로 높아가는, 빛 한줄기 없는 캄캄한 빚의 감옥, 냉혈의 빚의 족쇄에 채워진 채, 오늘도 일을 하네. 세상을 향한 수족을 자르고 머리를 옥죄며, 끝내는 피를 말리며 병들게 하는 잔인한 신용바이러스여, 신종 불치의 병이여.(중략)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신용불량자들의 심정과 현실을 담은 시집 <신용바이러스> 발간을 앞두고 있다. 시집에는 이 시를 포함해 장경기 시인이 화보와 함께 읊은 신용카드 빚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들이 담겨 있다. 지난 2003년 카드대란 당시 신용불량자 문제를 가장 가까이서 접근해 사회 이슈화한 민주노동당이 최근 심상정 의원 등을 중심으로 연석회의를 지원하며 다시 주위를 환기시키고 있다. 최근 열린우리당 이종걸 의원 등이 발의한 '이자제한법'도 이 문제에 접근한다. 시집 <신용바이러스>는 2003년 카드대란 당시 350만명의 신용불량자와 그 연계가족을 합해 1000만명에 이르는 국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신용카드 대란을 서민의 편에서 적나라하게 묘사한 장경기 시인의 시집 <신용불량자>를 보완한 책이다. 꺼내기 싫은 문제지만 '신용불량자'가 더 이상 처절한 고통에서 주저앉게 놓아 둘 수 없다는 것이 시집의 발간 이유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과 인권 변호사, 교수 등의 지원에다 신용불량자클럽·금융채무사회책임연대·면책자클럽·금융피해자 파산지원연대·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등 관련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현재 '신용불량자'는 '금융채무 연체자' 혹은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명칭이 변경됐고 인권단체 등은 '금융피해자'로 부르자고 한다. 연석회의는 1999년 200만 명 정도였던 금융피해자가 2004년 12월에는 362만 명으로 늘었으며, 올해는 400만 명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연석회의는 이 시집 발간사에서 "'신용불량자'가 아니라, 왜 우리가 금융피해자일 수밖에 없는지 때로는 격정적인 어조로 때로는 잦은 슬픔으로 노래를 부른다. 온갖 매체가 섬광과 같은 정보를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삶을 온전히 표현하는 매체는 너무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작은 시집이 우리의 삶과 우리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하겠지만 '금융피해자'의, 우리의 사회적인 요구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며 "이 작은 시집을 통해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던 ‘신용불량자’가 아니라 ‘금융피해자’로서 우리의 당당한 사회적인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가늠해본다"고 밝혔다.
그는 시집에서 '신용바이러스의 대습격 이후 살포자와 감염자의 대결'을 묘사하고 있다. 신용불량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내년 9월 개봉예정으로 있는 영화 <돈꿀전쟁 www.donkkul.com>도 바로 자신의 저서 <돈꿀전쟁>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장경기 감독은 22일 기자와 만나 "신용불량자는 남이 아니 우리 이웃, 대다수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문제"라며 "하지만 이 때까지 시나 소설, 영화 등 어느 예술 매체에서도 신용불량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시집을 내고 영화감독으로 참여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란다. 그는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신용카드 빚으로 고통을 받는 것을 보았다"며 "하지만 그들의 실질적인 문제를 파헤치고 다뤄주는 언론이나 문화가 없어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석회의를 비롯해 진보적 정당, 인권 단체 등이 이 문제를 다시 사회 이슈화하는 것은 이 문제가 현재진행형이고, 새로운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박석철 기자 psc@sisaul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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